오정희의 파로호, 꿈꾸는 새, 바람의 넋 -소양댐, 중도배터, 46번 국도...

파라호01.jpg ‘서울 태생인 내게 춘천이란 오랫동안,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이며 교육 문화의 도시로 밑줄 쳐진 사회지리 교과서속의 한지명일뿐이었다. 춘천이라는 지명이 활자가 아닌 실체 비슷한 형체를 띠고 다가온 것은 대학생 때였다. 그 시절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던 ㅎ은 성격이 괄괄하고 차림새나 태도가 거칠것이 없이 당당하여 다소곳한 여성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게도 할 타입이었지만 나는 내숭없이 솔직하고 씩씩한 그 친구가 좋았다. 그 친구는 남자 선배 후배, 동기생들과도 동성의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심각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어제 춘천 갔다 왔어.” “강원도 춘천? 거긴 왜?” “종일 강물만 보고 왔어.” 물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풍덩 빠졌었는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빛도 목소리도 촉촉하기 그지없었다. …

그녀로서는 그것이 연애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친구의 연애 출발점이었던 춘천은 오정희에게는 삶의 공간이자 창작의 공간으로 춘천의 곳곳이 작품이 묻어난다.

‘젊은 날, 자의적 선택이 아닌 남편의 직장에 따른 이주였지만 나는 춘천으로 오게 되었을 때 낯선 곳에서의 자발적 유폐와 고독에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춘천은 그해 봄, 처음 발을 내디뎠던 순간부터 내 안을 여지없이 밀려들었다. 때문에 나는 춘천 생활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쓰지 못했을 여러 편의 작품을 얻은 셈이었다. 여러 고장을 수몰시키고 물을 가둔 거대한 소양댐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훗날 「파로호」소설을 쓰게 하였고, 낯선 곳에서의 하염없는 배회와 외로움은 「꿈꾸는 새」「비어있는 들」「바람의 넋」등으로 형상화 되었다.

파라호02.jpg 서면을 오가는 배터와 붕어섬, 중도의 선사유적지, 줄곧 강과 산을 끼고 굽이굽이 휘어지던 46번 옛 국도의 풍경, 봄이면 복사꽃이 분홍빛 꽃구름으로 흐드러져 선경을 이루던 후평동의 낮은 언덕, 행려의 고단함과 인생유전의 감상들을 얼핏얼핏 보여 주던 옛 버스터미널의 모습 등은 모두 소설 속의 상황이나 갖가지 상징성과 은유로 담겼다.’

자료출처 : 김유정과 떠나는 춘천문학여행(문화통신)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문학동네)